어제 코칭중에 대표가 말했다. “이런 거는 AI가 하기 어려워.”
문제가 있었고, AI에 첫번째 프롬프트를 넣기 전에 한 말이다. 1년 전에도 같은 문제에 대해 말을 들었다. 불편했다.
단정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결론이 먼저 와 있을 때가 있다. 화면을 같이 켜기도 전에, 메뉴 하나 같이 눌러보기도 전에, “이건 AI가 못 한다”가 먼저 정해져 있다. 결론을 먼저 정해두면, 그 뒤에 같이 보는 화면도 결론을 확인하는 용도가 된다. 같이 한 단계씩 짚어가도 “이게 되긴 되네”가 아니라 “이건 좀 되는 거고, 진짜는 안 되겠지”로 받게 된다.
그 모양을 어디서 봤더라.
스마트디자인 편집창 앞에서
지인이 쇼핑몰을 만들어야 한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내가 워드프레스로 웹사이트 하나를 만들어봤다는 이유였다. 그 사람에게 cafe24 쇼핑몰이나 워드프레스 웹사이트나 비슷한 거였다. 둘 다 인터넷에 뭔가를 올리는 일이고, 한 번 해본 사람이면 다른 것도 할 줄 알 거라고 생각했다. 그 분류 안에서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부탁이 왔다.
cafe24로 쇼핑몰의 기본 구조까지는 갔다. 상품 등록, 카테고리, 결제 모듈 연결. 관리자 페이지에서 메뉴를 눌러가며 설정을 만지면 되는 곳까지는 해냈다. 그런데 디자인을 손보기 시작하면서 막혔다.
2019년이었다. 스마트디자인 편집창을 열면 왼쪽에 화면 미리보기가 있고 오른쪽에 코드가 펼쳐졌다. 디자인을 바꾸려면 그 오른쪽 코드 화면을 만져야 했다. 미리보기 화면에서 직접 끌어다 옮기거나 클릭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 글자 크기 하나, 간격 하나를 바꾸려 해도 코드 안의 어디를 찾아서 어떤 줄을 고쳐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매뉴얼을 펴봤다. html과 css를 알아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코드 없이는 안 만져진다는 사실이 명확했다.
그 사실 앞에서 내가 한 말이 있다.
“나는 나이가 많다. 주변에 코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전문가들이나 하는 거다.”
세 문장이 거의 동시에 나왔다. 코드를 한 줄도 들여다보기 전이었다. html이 뭔지, css가 뭔지, 두 단어가 서로 어떤 관계인지 찾아보기 전이었다. 결론이 먼저 와 있었고, 그 결론은 단단했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한 문장이 정해지자, 그 뒤로 매뉴얼은 안 펴졌다.
절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며칠 동안 쇼핑몰 작업이 멈춰 있었다. 멈춰 있는 동안 보이는 게 있었다. 디자인을 못 고치면 쇼핑몰을 지인에게 못 넘긴다는 사실. 지금 화면 상태로는 그 사람이 쓸 수 있는 쇼핑몰이 아니라는 것. 글자가 너무 작아 모바일에서 안 읽히고, 색이 따로 놀고, 메뉴 간격이 답답하게 붙어 있었다.
지인은 코드를 모른다. 스마트디자인 편집창에 들어갈 일도 없을 사람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 화면 안에서 막혀 있는 곳이 곧 그 사람이 받게 될 쇼핑몰의 한계였다. 내가 못 푸는 부분이 그대로 그 사람 쇼핑몰의 한계가 되는 거였다. 그 사실이 며칠을 지나면서 점점 더 무거워졌다.
어느 날 이렇게 생각했다.
절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심 같은 게 아니었다. 결심하려면 “할 수 있다”는 쪽으로 마음을 한 번 옮겨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모르겠고, 어쨌든 안 움직이면 지인에게 못 넘긴다”는 거였다.
그래서 넘어야 했다. 넘었다.
어떻게 넘었는지의 이야기는 여기서 짧다. 길게 풀면 다른 글이 된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단정해놓고 멈춰 있다가 매뉴얼을 다시 펼쳤다는 사실이다.
단정하는 모습은 닮았지만, 나는 단정한 채로 멈출 수 없었다.
어제 그 한마디로 돌아와
어제 대표가 “이런 거는 AI가 하기 어려워”라고 말했을 때, 먼저 온 건 불편함이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결론을 짓는게 불편했다. 나도 그랬다. 스마트디자인 편집창을 켜놓고 “나는 나이가 많다, 주변에 코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전문가들이나 하는 거다”라고 말했었다. 단정의 모양은 똑같았다.
지금도 그렇다. AI 툴 앞에서 매일 의심한다. 지금 쓰고 있는 이 도구가 최선이 아닐 거라고, 더 잘 쓰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어제 알아본 방식이 오늘은 이미 한물간 방식일 거라고. 새로 나온 도구를 켜고, 메뉴를 두세 번 눌러보고, 어제 쓰던 곳에 같은 작업을 다시 올려본다. 단정 하나가 풀렸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 한 번 더 의심해본다.
멈추면 뒤처진다. 그래서 늘 의심한다.